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이작 뉴턴 (문단 편집) === [[남해회사 거품 사태|남해회사 거품 투자 손실]] === >I can calculate the motion of heavenly bodies, but not the madness of people. >'''나는 천체의 움직임은 계산할 수 있지만, 사람의 광기는 도저히 계산할 수 없다.''' >---- >이익 실현 후에도 남해회사의 주가가 더 오르는 것을 보고 전 재산을 주식 투자하기 직전에 남긴 말. 뉴턴은 [[1720년]]에 역사상 최초로 발생한 [[버블경제]]인 '''[[남해거품사건]]'''에서 합계 2만 파운드(약 '''20억''')에 달하는 [[주식]]을 단타 매매 형식으로 투자했다가 실패했다. 이 때 날린 금액은 자기 재산의 '''8~90%'''라고 한다. 초반엔 막 오르고 있는 사우스 시 주식을 매입하고 더 오르자 처분해 주식 투자에 적절히 성공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주가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아서 [[존버]]하고 있던 주변인들이 쾌재를 부르자 다시 주식에 도전한다. 하지만 그가 다시 주식 투자를 시작한 시기는 주가가 피크였던 시점이었고, 이후 거품이 꺼지며 주가가 폭락하여 가진 전 재산을 날려먹었다. 그는 거품이 꺼지기 시작하여 주가가 급격히 떨어지고 있음에도 [[손절매]]를 하긴 커녕 저점매수를 시도하다 큰 낭패를 보았다. 재산을 몽땅 투자하고도 부족해 대출까지 동원해 자금을 끌어모아, 떨어지고 있는 주식에 [[물타기]]를 시도했다는 것이다. 이 사건으로 가진 재산의 대부분을 날려먹은 건 사실이지만, 이후 사망하기까지 7년만에 주식 투기 이외의 수단으로 본인의 재산을 원래대로 복구[* 뉴턴은 말년에 고정적인 수입원이 많았다. 먼저 물려받은 토지 자체가 많았다. 뉴턴은 부계한테 쓸만한 장원과 농장을 많이 물려받았다. 게다가 양부 바너바스 스미스 사망 이후 뉴턴의 어머니 해나 에이스코는 현대의 추산에 따르면 잉글랜드에서 토지를 가장 많이 보유한 1,500명 안에 들었다. 해나 사후 대부분은 스미스의 아들 벤자민에게 돌아갔으나 워낙 땅이 많았다보니 뉴턴에게도 상당량의 토지가 돌아갔다. 출판물 인세도 워낙 많았다. 프린키피아는 당시에도 엄청난 평가를 받았으며 다른 책들도 잘 팔렸다. 조폐국장으로서 찍어난 주화에 비례해 받는 성과급도 어마어마했다. 사실 투자 같은 건 안 했어도 상관없는 부자였는데, 괜히 욕심부리다가 날린 것이다.]하는 데 성공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